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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 최초로 비트코인을 법정화폐로 만든 엘살바도르. 결제 이용률은 25.7%에서 8.1%로 무너졌지만 정부의 비트코인 보유는 계속되고 있습니다. 무엇이 실패였고, 무엇이 남았는지 정리했습니다.

2021년 9월 7일, 중미의 작은 나라 엘살바도르는 전 세계가 지켜보는 가운데 세계 최초로 비트코인을 법정화폐로 선언했습니다.
나이브 부켈레 대통령은 화산 지열로 채굴한 '친환경 비트코인'을 앞세워 비트코인 시티 건설까지 공언했습니다.
그로부터 정확히 5년, 이 실험은 어떻게 됐을까요. 결론부터 말하면, 국민들의 일상 속 비트코인은 사실상 실패했지만, 정부의 비트코인 보유 자체는 계속되고 있다는 두 가지 상반된 결과가 동시에 존재합니다.
정부가 전 국민에게 지갑을 나눠줬지만
엘살바도르 정부는 비트코인 사용을 촉진하기 위해 '치보(Chivo)'라는 전자지갑 앱을 만들어 전 국민에게 배포하도록 했습니다.
가입하면 30달러 상당의 비트코인을 무료로 얹어주는 파격적인 유인책도 곁들였습니다. 그런데 AFP 통신에 따르면 지난해 기준 이 앱의 실제 사용률은 8%에 불과했습니다. 국민 대부분이 30달러를 받고 앱을 지운 셈입니다.
더 상징적인 숫자는 결제 이용률입니다. 비트코인 도입 초기 25.7%였던 결제 이용률은 3년 만에 8.1%로 추락했습니다.
심지어 국가 정책의 원조 격인 '비트코인 비치' 엘존테 지역에서도 이런 일이 있었습니다.
2026년 한 비트코인 코어 개발자가 엘존테의 한 식당에서 비트코인으로 점심값을 결제했는데, 식당 직원은 "이번 달 들어 받은 첫 비트코인 결제"라며 놀라워했습니다. 심지어 그가 사토시(비트코인 최소 단위)로 팁을 주려 하자, 다른 직원은 "비트코인 앱 사용법을 잊어버렸다"며 받지 않았습니다. 국가 정책의 발상지에서마저 비트코인 결제가 일상에서 사라진 것입니다.
⚠️ 결제 이용률, 앱 사용률 수치는 조사 시점과 기관에 따라 다르게 집계될 수 있습니다.

왜 국민들은 쓰지 않았나
이유는 크게 세 가지로 정리됩니다.
첫째, 가격 변동성입니다. 아침에 커피값으로 쓸 만큼의 비트코인이 저녁에는 가치가 달라져 있으니, 일상 결제 수단으로 신뢰하기 어려웠습니다.
둘째, 지갑 사용의 번거로움입니다. 이미 현금과 카드에 익숙한 국민들에게 새 앱 사용법을 배우는 비용이 생각보다 컸습니다.
셋째, 그리고 가장 근본적인 이유는 국민들이 비트코인을 '쓰는 돈'이 아니라 '모아두는 자산'으로 인식했다는 점입니다. 오를 것 같은 자산을 굳이 오늘 커피값으로 써버리고 싶어 하는 사람은 많지 않습니다.
여기서 지난 칼럼에서 다룬 논리를 다시 가져올 필요가 있습니다. 앞서 우리는 튀르키예·나이지리아처럼 자국 화폐가 불안정한 나라에서 코인이 자연스럽게 확산된다고 짚었습니다.
그런데 엘살바도르는 사정이 다릅니다. 이 나라는 이미 2001년부터 자국 화폐(콜론) 대신 미국 달러를 공식 화폐로 써온 나라입니다. 즉 국민 입장에서는 이미 상대적으로 안정적인 달러를 쓰고 있었기 때문에, "화폐가 불안해서 코인이 필요하다"는 절박한 동기 자체가 애초에 없었던 셈입니다.
정부가 위에서 강제로 밀어붙였지만, 정작 이를 자발적으로 원하는 밑바탕 수요는 약했던 것입니다. 신흥국에서는 화폐 불안이 코인 확산을 자연스럽게 이끌지만, 엘살바도르에서는 그 전제 조건 자체가 빠져 있었습니다.
IMF의 최후통첩
이런 상황에서 결정타가 된 것은 국제통화기금(IMF)이었습니다. 엘살바도르는 재정난 해소를 위해 IMF로부터 14억 달러(약 2조 원) 규모의 지원이 필요했는데, IMF는 이 자금을 40개월에 걸쳐 지원하는 조건으로 몇 가지를 요구했습니다.
공공 부문의 비트코인 관련 경제활동 제한, 민간 부문의 비트코인 결제를 의무가 아닌 자율로 전환, 세금은 반드시 달러로만 납부, 그리고 치보 지갑의 점진적 축소였습니다.
2025년 1월 31일, 엘살바도르 의회는 결국 상점의 비트코인 결제 의무화 조항을 삭제했습니다. 다만 법정화폐 지위 자체는 형식적으로 유지했습니다. 이후 2025년 7월에는 치보 지갑을 아예 청산·매각하고, 정부 산하 비트코인 운용기금 '피데비트코인'도 정리하겠다는 계획까지 나왔습니다.

그런데 정부는 여전히 비트코인을 사고 있다
여기서 이 이야기의 반전이 나옵니다. IMF와의 합의문 어디에도 부켈레 정부가 추진해온 '전략적 비트코인 준비금(Strategic Bitcoin Reserve)', 즉 정부 명의의 비트코인 매입 프로그램을 멈추라는 조항은 없었습니다.
엘살바도르 국가비트코인청(ONBTC)에 따르면 2025년 중반 기준 정부는 약 6,239개의 비트코인(당시 가치 약 7억 5,300만 달러)을, 2026년 중반 기준으로는 약 7,400~7,700개를 보유하고 있습니다.
비트코인 가격이 한때 반토막 나면서 큰 평가손실을 봤던 시기도 있었지만, 이후 가격이 회복되며 평가액이 다시 6억 달러 이상으로 올라선 시점도 있었습니다.
즉 "비트코인을 국민 모두가 쓰는 일상 화폐로 만들겠다"는 실험과, "정부가 국가 자금으로 비트코인을 장기 보유하겠다"는 실험은 원래 서로 다른 두 가지 프로젝트였는데, '법정화폐'라는 하나의 이름 아래 묶여 있었을 뿐입니다.
전자는 명확히 후퇴했지만, 후자는 오히려 계속되고 있습니다. 이는 마치 개인이나 기업이 코인을 매입해 장기 보유하는 방식과 본질적으로 같은 구조입니다. 다만 그 주체가 개인이 아니라 국가라는 점이 다를 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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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른 나라들은 이 실험에서 무엇을 배웠나
엘살바도르의 사례는 다른 나라들에게 명확한 반면교사가 됐습니다.
스위스에서는 중앙은행이 외환보유액 일부를 비트코인에 투자해야 한다는 시민 발의 국민투표 논의가 있었는데, 스위스 언론은 엘살바도르 사례를 직접 인용하며 신중한 접근을 촉구했습니다. 한 매체는 엘살바도르의 국가부채가 GDP의 85%까지 치솟고 중남미 최저 수준의 경제성장률을 기록한 점을 지적하며, 이 실험이 비트코인 정책 전반에 미친 영향을 경고로 받아들여야 한다고 짚었습니다.
다만 동시에 일부 해외 논평가들은 회복된 비트코인 가치를 근거로 "국가와 중앙은행이 장기 전략 준비금 포트폴리오에 비트코인을 포함하는 것을 고려해야 한다"는 긍정적 평가를 내놓기도 해, 이 실험에 대한 국제적 평가 자체가 여전히 엇갈리고 있습니다.
결국 엘살바도르가 남긴 가장 확실한 교훈은 이것입니다. 국가가 법으로 강제한다고 해서, 국민들이 화폐 사용 습관을 바꾸지는 않는다.
반면 국가가 하나의 투자 주체로서 장기 보유 전략을 편다면, 그것은 개인 투자자의 장기 보유 전략과 마찬가지로 시장 상황에 따라 성패가 갈리는 별개의 문제입니다.
이 둘을 구분하지 않고 "비트코인 법정화폐 = 성공 또는 실패"로 뭉뚱그려 판단하면, 정작 중요한 그림을 놓치게 됩니다.
🔗 함께 읽으면 좋은 글: "내 코인, 신탁으로 물려줄 수 있을까: 가상자산 자산승계의 현재와 한계" — https://bbmstyle.tistory.com/165 — 국가가 세대를 넘어 장기 보유하려는 전략 자산으로서의 비트코인은, 개인이 다음 세대에 코인을 물려주는 장기 보유·승계 전략과 고민의 결이 비슷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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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핵심 요약
- 엘살바도르는 2021년 9월 세계 최초로 비트코인을 법정화폐로 채택했지만, 결제 이용률이 25.7%에서 8.1%로 추락하며 국민들의 일상 사용은 사실상 실패했습니다
- 실패 원인은 가격 변동성, 지갑 사용의 번거로움, 그리고 국민들이 비트코인을 '화폐'가 아닌 '자산'으로 인식했기 때문입니다
- 엘살바도르가 이미 2001년부터 달러를 공식 화폐로 써왔다는 점에서, 신흥국형 '화폐 불신' 수요 자체가 애초에 부족했던 것도 근본 원인으로 꼽힙니다
- 2025년 1월 IMF의 14억 달러 지원 조건에 따라 상점의 비트코인 결제 의무 조항이 폐지됐고, 치보 지갑도 청산 수순을 밟고 있습니다
- 다만 정부의 '전략적 비트코인 준비금' 매입은 IMF 합의와 별개로 계속되고 있어, 일상화폐 실험의 실패와 국가 자산 보유 전략의 지속은 구분해서 봐야 합니다
- ⚠️ 정부 보유 비트코인 수량과 평가액은 가격 변동에 따라 계속 바뀌므로, 최신 수치는 엘살바도르 국가비트코인청 발표로 재확인을 권합니다
📎 참고 자료
엘살바도르 "비트코인으로 결제 안해도 돼"…입장 바꾼 이유 보니 - 아시아경제 (2025.02.01) -
엘살바도르, 비트코인 실험 결국 실패... 스위스에 던지는 경고 - 글로벌이코노믹 (2025.02.18) -
'비트코인 나라' 엘살바도르의 변심?…결제 이용률 25.7%→8.1%, 이유 알아보니 - 블록미디어 -
치보 월렛이 비트코인 쌓았다…IMF, 엘살바도르에 "조건 미이행" 경고 - 블록미디어 (2025.07.18) -
엘살바도르, 비트코인 법정화폐 5년 만에 결제 의무 폐지했다 - 위키트리 -
[한경 코알라] 비트코인이 법정화폐가 된 엘살바도르 - 한국경제 (2021.06.22) -
암호화폐, 국가신용도까지 흔든다...'엘살바도르·나이지리아' 주목 - 블록미디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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